[특별한 흔적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탈출 작전’의 그곳

입력 : 2017.08.01 08:47

됭케르크(Dunkerque · 영어명 Dunkirk*)는 프랑스 북부 노르파드칼레(Nord-Pas-de-Calais) 레지옹의 노르(Nord) 데파르트망에 있는 해안 도시다. 파리 북쪽 270km, 벨기에 국경에서 14km 지점에 있다. 네덜란드 서플라망어에서 모래 언덕을 뜻하는 ‘됭(dune)’과 교회라는 의미의 ‘케르크(kerque)’를 합성한 명칭으로 ‘사구()의 교회’ 정도로 풀이된다.

* 영어로는 던커크(Dunkirk)지만, 최근 개봉된 영화 제목처럼 양국 발음을 섞은 ‘덩케르크’로 더 알려졌다.

프랑스 북부의 해안 도시 됭케르크는 벨기에 국경과도 가깝고, 영국을 마주 보고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전쟁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14~16세기 부르고뉴, 오스트리아, 스페인이 차례로 이곳을 영유했다가, 1658년 프랑스령으로 복속됐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점령하지 못한 됭케르크를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함락했다. 전쟁사에 영원히 기록될 ‘됭케르크 철수 작전’은 나치 독일군에 점령되는 과정에서 전개됐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종반인 1944년 9월 됭케르크를 포위해 이듬해 5월 수복했다.

/유용원의 군사세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탈출 작전”
1940년 5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을 뚫었다. 구데리안과 롬멜의 기갑사단이 아르덴 삼림 지역을 기습했고, 배후가 뚫린 연합군은 둘로 갈라졌다. 영국군과 프랑스군 40만 명이 포위됐다. 이들이 고립된 지역이 됭케르크였다.

그래픽= 신현정

독일군의 공격을 피해 그곳을 탈출하고, 또 구출하기 위한 작전이 시작됐다. 영국군은 흩어진 전투함들을 급히 모았으나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민간 선박들이 몰려왔다. 화물선부터 유람선, 고깃배까지 달려왔다. 상류층은 레저용 호화 요트를 몰고 합류했고, 청소년들까지 학교 실습용 보트를 끌고 오는 바람에 돌려보내느라 애를 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모인 배 수백여 척으로 민간함대가 구성됐다. 선체의 크기는 보잘것없지만 정신은 스페인 무적함대와 같다고 해서 ‘모기함대(mosquito armada)’라고 불렸다. (모기함대 중 가장 작은 배의 길이는 고작 4.5m였다.) 이들과 함께 대형 구축함을 포함한 철수 선단 약 900여 척이 도버 해협을 건넜다.

/국방부 블로그

‘작은 배들의 기적’
파도가 높고 모래가 많아 큰 배는 접근하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작은 구명정으로 병사들을 태워 날랐지만 역부족이었고 이때부터 모기함대의 활약이 시작됐다. 한 보트는 정원의 30배를 태우고 아슬아슬하게 영국에 도착했다. 해안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다 모래톱에 좌초되자 그걸 역이용해 다른 선박을 접안시키고 임시 부두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해협을 7번 왕복하며 7000여 명을 구한 유람선도 있었다. 9일간 계속된 이 작전으로 구출된 병사는 모두 33만8000여 명. 모기함대가 구한 인원만 6만7000여 명으로 전체의 20%였다.

됭케르크 철수 작전은 거의 34만 명에 달하는 연합군 병사들을 불과 9일 만에 바닷길로 구출한 대규모 작전이었고, 문헌으로 남은 전쟁사 최대 규모의 철수였다.(다이너모(Dynamo) 작전으로도 불린다.) 또 민간인이 적진 앞까지 침투해 군인을 구한 작전이기도 했다. 전쟁 초반, 연일 격퇴당해 절망에 빠졌던 유럽 연합군은 이 작전을 계기로 전의를 끌어올려 반격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이들의 희생과 용기를 기리는 기념 항해가 5년 마다 한 번씩 도버 해협에서 펼쳐진다.

전쟁기념관에서 희생정신 기리는 오늘날
현재, 됭케르크에는 전쟁기념관이 있다. 샹티에 드 프랑스 거리(Rue des Chantiers de France)에 있는 낡은 건축물을 박물관의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은 1874년경 세워진 방어용 요새로 1940년경에는 프랑스 군대와 연합군 측의 본부로도 쓰였다. 2000년 ‘됭케르크 전쟁 기념관(Mémorial du souvenir de Dunkerque)’이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처음 문을 열었다. 명칭 그대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벌어진 됭케르크 전쟁(Bataille de Dunkerque, 1940. 5. 26 ~ 1940. 6. 4)에서 전사했거나 부상당한 군인, 지역민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전쟁의 고통을 상기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됭케르크 전쟁기념관 페이스북, 남프랑스 관광청

전시관 입구에는 전투에 참가했던 연합군 국가들의 국기가 나란히 걸려있다. 총 700m²에 이르는 전시관 내부에는 됭케르크 전쟁과 관련된 사진, 그림, 문헌 기록 등이 진열되어 있다. 방문객들은 작전 구상에 사용했던 지도와 프랑스 군인들이 보유했던 소총 무기, 대포, 군복, 독일군의 오토바이, 군함 모형, 비행기 조각 등을 볼 수 있다.

흥남 철수 작전

6·25 전쟁을 겪었기에 됭케르크 철수 작전을 보고 흥남 철수 작전을 떠올리는 한국인들은 많다. 흥남 철수 작전은 1950년 12월 중국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불리해지자 북진했던 미군과 한국군이 피난민과 함께 함경남도 흥남항에서 선박으로 철수했던 작전이다.

중공군의 공세에 전세가 불리해지자 유엔군 사령부는 1950년 12월 8일 동부전선에서 북진에 나섰던 미 제10군단과 한국군 제1군단의 병력에 대해 철수 명령을 내렸다. 미 제10군단은 휘하의 모든 부대에 철수해서 흥남으로 집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약 10만 명에 이르는 미군과 한국군이 흥남에 집결했으며, 그곳에서 12월 15일에서 12월 24일까지 열흘에 걸쳐 193척의 선박을 타고 38선 이남 지역으로 철수했다.

/국가보훈처 공식 블로그 ‘훈터’, 영화 스틸컷

철수하는 미군과 한국군을 따라 10만여 명에 이르는 피난민도 38선 이남 지역으로 내려왔다. 당시 미 제10군단의 고문으로 활동하던 현봉학의 요청으로 수많은 피난민이 군인들과 함께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특히 군수 물자를 운송하기 위해 투입되었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 호(SS Meredith Victory)의 선장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는 화물을 버리고 1만4000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거제도까지 이송해주었다. 메러디스 빅토리 호는 한때 가장 많은 난민을 태우고 항해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지금도 이 일을 기리기 위해 경상남도 거제시의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는 흥남 철수 작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만물상] 흥남 철수와 레인빅토리號

영화로 제작된 역사

‘덩케르크’ (2017년), ‘덩케르크 디 오리지널’ (1958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철수 작전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막강한 독일군의 진격에 미처 전열을 정비하지 못한 연합군의 후퇴작전을 놀랄 만한 현장고증으로 당시의 경험을 훌륭하게 되살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놀런 감독은 “됭케르크 작전은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작전이고, 영국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덩케르크’는 1958년에도 레슬리 노먼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진 선례가 있다.

이 밖에 영화 ‘어톤먼트(2007)’에서도 됭케르크 해안 장면이 5분간의 롱테이크신으로 이어진 바 있어 지금까지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는 전의를 잃고 좌절감에 빠진 병사들의 모습을 재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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