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 제대로 가고 있나

입력 : 2017.09.01 08:49

지난 8월 4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중단해야 한다(42%)’와 ‘계속해야 한다(40%)’가 오차 범위 내에서 비슷하다. 찬반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정부는 신고리 원전 5·6호기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며 그 구체적 방안으로 ‘공론조사’를 내놨다. 원전 정책을 결정하는데 ‘공론조사’가 적합한 것일까. 또, 우리의 공론조사는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기사 더 보기 ▶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찬반 여론조사)

공론조사란?

일반 여론조사에 숙의(Deliberation)를 더한 조사 기법이다. 숙의형 여론조사라고도 불리는 *공론조사는 제임스 S. 피시킨(James S. Fichkin)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1991년 저서 ‘민주주의와 공론조사(Democracy and Deliberation)’를 통해 처음 소개했다.   

공론조사는 크게 네 단계를 거친다. 첫 단계는 주제에 대한 1차 여론조사이며, 두 번째 단계는 1차 여론조사 응답자 중 성·연령·지역별로 대표성 있는 토론 참가자(시민참여단)를 선정하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시민참여단을 한자리에 모아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고 전문가 강연과 상호 토론(공론화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1차 여론조사와 동일한 질문으로 2차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이 2차 조사 결과는 정보 습득과 토론이라는 숙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결과다. 여기서 도출된 2차 여론조사 결과가 1차 여론조사와 비교해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공론조사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공론조사는 왜 필요할까? 갈등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 국민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국민투표’지만,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기 때문에 쉽게 추진하기 어렵다. 공론조사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을 들여 갈등적 사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 여부를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국내서 있었던 몇 차례 공론조사… 그 결과는?

(왼)2002년 7월, 법정 스님(왼쪽)이 수경 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북한산을 관통하는 사패산 터널 공사를 반대하는 농성장을 둘러보고 있다 (오)2007년 1월 11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문제와 관련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조선DB

주요 정책 결정에 공론조사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3년 7월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 공약이던 서울 외곽순환도로 사패산터널 공사 백지화에 대해 결론을 못 내리다가 “공론조사로 정하자”고 제안하면서다. 하지만 터널 공사에 반대하던 불교계가 공론조사를 거부해 공론화위원회 구성 자체가 무산됐다.

2005년에는  8·31 부동산 정책을 놓고 공론조사가 실시됐었다. 이 조사는 수도권으로 조사 대상을 한정하고, 1차 여론조사 표본도 511명에 불과해 ‘끼워맞추기식 여론 수렴’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2007년에는 1월에 노무현 대통령이 연초 기자회견에서 제안했던 헌법의 대통령 임기 조항만 고치는 ‘원포인트 개헌’에 대한 공론조사가 이뤄졌다. 원포인트 개헌 찬성이 1차 조사 41.8%에서 2차 조사 56.1%로 상승했지만 야당의 반발로 개헌은 무산됐다. 같은 해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갈등 사안을 놓고 공론조사가 추진됐다가 실패로 돌아가기도 했다. (기사 더 보기 ▶ 사패산 터널·부동산 대책·개헌… 공론조사 시도했지만 결과 못내)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조사 4가지 쟁점

앞서 언급한 국내 사례를 보면, 공론조사를 시도했던 대부분의 경우는 실패로 돌아갔다. 현재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와 관련한 공론조사도 진행 과정에서 여러 비판들이 나오고 있다.

추석연휴 시민참여단에 온라인 강의 자습 시켜 결론낸다는 원전공론화委

25년 동안의 공론화 끝에 탈(脫)원전 결정한 독일

2011년 3월 14일, 후쿠시마 원전 폭발 현장. 연기가 나는 것이 원전 3호기 외곽건물 폭발 모습이다. /조선DB

독일은 25년 동안의 공론화 끝에 동안 탈(脫)원전을 결정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발생 이후 원전 폐지 논의가 본격화 됐고, 1998년 총선에서 ‘원자력 발전을 점진적으로 폐쇄한다’는 합의문이 만들어졌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그해 4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출범시켜 탈원전 시행에 대한 의견을 묻는 절차에 돌입했다.

종교지도자, 재계 인사, 원로 정치인, 대학 교수, 시민단체 등 17명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한 달여 동안 토론을 벌인 끝에 ‘2021년까지 모든 원전 폐기’로 결정한 보고서를 메르켈 총리에게 제출했다. 총리는 내각을 소집해 다시 7시간에 걸쳐 토론을 벌인 후 탈원전을 결정했다.

일본도 지난 2012년 8월 ‘에너지환경의 선택에 대한 공론조사’를 벌인바 있다. 3000명의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300명의 시민배심원단을 구성해, 2030년 원전 의존도에 대한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학습과 토론을 거쳐 선택하게 했다. 그 결과 원전 ‘제로’ 시나리오 지지율이 46.7%로 나타났고, 일본 정부는 이를 정책에 반영했다.

이밖에도 공론조사는 미국, 영국, 호주, 중국, 일본 등에서 세금인상, 사형제 폐지, 군왕제 유지, 정부지출 우선순위 등 다양한 정책적 방침 결정에 효과적으로 활용됐다.

신고리 원전 공론조사 성공적으로 진행되려면

2017년 6월 1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의 신고리 원자력 5·6호기 건설 현장. 사진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현재 공사가 거의 끝난 신고리 3·4호기이다.

피시킨 교수가 제시한 공론조사 방법론은 거의 투명하게 공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은 지난 30여년간 그의 연구진에게 프로젝트의 자문을 맡겼다. 이는 방법론을 잘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사 진행의 공정성도 못지 않게 중요하기 때문. 공정성과 투명성이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공론조사의 효과적 진행은 물론이고 그 도출된 결론도 힘을 얻을 수 없다. (기사 더 보기 ▶ [주간조선] 27개국 공론조사 사례)

한국 공론조사에 대한 피시킨 교수의 생각은 어떨까. <주간조선>이 이메일을 통해 피시킨 교수에게 물었다. 피시킨 교수는 “한국 내 집단에서 어떤 방식으로도 도움이나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며 “한 나라의 정부가 우리에게 어떤 조언이나 도움도 요청하려는 노력 없이 공론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공론조사의 고안자로 한국 정부가 현재 변형해 수행하는 공론조사 기법을 평가해 달라’는 요청에는 “한국이 수행하는 프로젝트에 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평가할 수 없다…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공론조사가 적절해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노력의 질’에 달렸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성공적인 공론조사를 위한 10가지 요건을 제시했다. 다음의 10가지 요건에 부합해야 신고리 원전 공론조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기사 더 보기 ▶ [주간조선] ‘공론조사 창시자’ 피시킨 교수 단독 인터뷰)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와 관련한 공론조사는 다른 나라들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른 나라들은 정책 방향을 결정하거나 앞으로 진행할 사안에 대해 공론조사를 진행했지만, 신고리 5·6호기는 이미 수조원이 투입돼 공사가 29% 진행된 상태다. 건설업자, 지역주민 등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잡음과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와 공론화위가 피시킨 교수가 말한 ‘노력의 질’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그래픽 이은경, 신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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