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 가면 장난감도 있고 보석도 있고

입력 : 2017.06.01 08:55

지금은 쪽방 크기의 20여 개 가게만이 남아있지만, 과거 청계천 변에는 200여 개 가까운 헌책방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늘 교복을 입은 중고생과 대학생들이 북적였다. 오늘날 화려한 불빛으로 관광객을 맞는 동대문 패션 특구는 사실 판자촌 미싱 노동자들의 일터였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OO 거리’, ‘OO 골목’이라 불리는 곳들이 많다. 특정 업종의 가게들이 모여있다 보니 자연스레 이렇게 부르게 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짐을 풀었다 짐을 싸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던 ‘OO 거리’에는 어떤 사연들이 숨어있을까. 한국에서 ‘OO 거리’가 가장 많은 서울과 서울 근교를 중심으로 그 길의 역사를 더듬어봤다.

① 청계천 헌책방 거리

(왼쪽) 1960년대 청계천 헌책방 거리의 모습. (오른쪽)청계천 헌책방 거리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 학생들. /조선DB

1959년부터 청계천 일대에 하나둘 생기기 시작한 헌책방들은 60~70년대 그 수가 200여 개에 달하며 전성기를 이루었다. 헌책방은 돈 없는 중고생들에겐 싸게 참고서를 살 수 있는 곳이었으며, 대학생들에겐 구하기 어려운 전문서적을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서점 자체의 쇠퇴와 인터넷 중고시장 등의 발달로, 현재는 10여 곳의 헌책방만이 남아있다.

규모는 확 줄었지만,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찾는 발길이 완전히 끊긴 건 아니다. 오래된 헌책이 주는 매력과 편안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을 찾는다. 헌책방을 비롯해 인근의 방산시장, 동대문시장까지 돌아보다 보면 반나절이 훌쩍 지난다. 헌책방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한 시(市) 차원의 노력도 있다. 서울시와 서울도서관은 매년 2차례씩 청계천 산책로에 ‘헌책다방’을 차리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헌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행사를 연다. 수십 년 경력의 헌책방 사장님들이 고객의 취향에 맞춰 무작위로 헌책을 배송해주는 ‘설레어함’ 상자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관련기사 이들 덕에, 청계천 헌책방 맥박이 뜁니다

② 방산시장 도배 거리

(왼쪽) 방산시장에서 벽지를 고르는 주부들. (오른쪽) 방산시장 입구의 최근 모습. /조선DB·한국관광공사

1976년, 을지로와 청계천 일대에 약 45억 원의 자본을 들여 세워진 방산종합시장(방산시장·芳山市場)은 포장자재 및 장판·벽지, 비닐 등으로 유명한 전문시장이다. 시장 안에 줄지어 늘어선 도배·벽지 점포들 때문에 ‘도배거리’라 불렸다.

방산시장의 ‘포장’ 명성은 1945년 광복 직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도 이곳에 작은 시장이 있었는데, 이때는 과자 시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과자류 판매가 성행하자 자연스레 밀가루와 설탕의 도매도 이뤄졌고, 과자를 포장하기 위한 비닐·종이 점포까지 들어섰다. 방산시장에서 파는 도매 용품들이 시중보다 20~30% 정도 저렴하다고 해 많은 이들이 찾았다. 그런데 오늘날 방산시장은 제과 제빵 재료와 기계들을 판매하는 베이커리 거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33길
가는길 지하철 2호선 을지로 4가역 하차 후, 6번 출구로 나와 직진
관련 사이트  방산시장상인연합회(http://www.bangsanmarket.net)

③ 세운상가 조명 거리

(왼쪽) 세운상가 내 한 조명가게. (오른쪽) 세운상가의 최근 모습. /한국관광공사

오늘날 용산 전자상가가 있다면 1970년대에는 세운상가가 있었다. 세운상가는 1966년, 당시 김현옥 전 서울시장이 종로 일대에 즐비하던 윤락업소를 정비하며 만든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다. ‘세상의 기운이 다 모인다’는 명칭(세운·世運)처럼, 1970~80년대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주거시설에는 연예인·고위 공직자들이 거주했으며,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대부분이 이곳에서 거래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내 유일의 종합 가전제품 상가였던 탓에, 전기·전자 부품은 물론 조명상가들이 줄을 이어 들어서 있었다.

세운상가의 쇠퇴는 1987년 용산 전자상가가 건설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입주업체가 대거 용산으로 이동했고, 거주민도 대부분 강남으로 이전했다. 2006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이 일대 공원화를 추진하며 철거될 위기에 처했었지만, 2015년 기존 건물들을 보존하는 것으로 개발 방향이 바뀌었다.

‘없는 게 없고,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준다’는 옛 명성만큼은 못하지만 여전히 세운상가의 조명거리에는 대낮에도 불빛이 반짝이고 있다. 최근 셀프 인테리어 열풍에, 이곳으로 발품을 팔러 오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159
가는길 ┃ 지하철 5호선 을지로 4가역 3번 출구에서 직진
관련 사이트 ┃세운전자플라자(http://sewoon.com)

④ 장충동 족발 거리

(왼쪽) ‘장충동 족발축제’에서 족발을 먹는 외국인. (오른쪽) 족발거리 모습. /조선DB·한국관광공사

장충체육관의 맞은편 족발 거리(골목에 더 가깝지만)에 따닥따닥 붙어있는 족발집 중에는 ‘원조’가 너덧 곳쯤 된다. 실제로도 어느 집이 원조 장충동 족발인지 서로 모른다. 알려진 바로는, 6·25 전쟁 때 평안북도에서 피난 온 한 할머니가 고향에서 먹던 족발을 응용해 개발했다고 한다. 처음엔 족발이 아닌 빈대떡과 만두가 주메뉴였는데, 손님들이 든든하게 배를 채울 고기 안주를 원해 족발이 탄생했다고.

장충동 족발 거리는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가 최고 전성기였다. 족발이 흔하고 싸지면서 이를 주메뉴로 하는 음식점이 전국에서 대거 생겨났다. 그중에서도 ‘장충동 족발’이 유명해진 까닭은 맞은편에 있던 장충체육관 덕분이다. 우리나라의 체육 경기가 대부분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던 시절, 가족 단위 시민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족발집으로 향했다. 이곳의 족발 맛이 유별난 건 아니지만, 30~40년간 대를 이어 족발 장사를 하고 있다는 명성 덕에 지금도 손님들이 북적인다. 최근 족발집이 있는 장충동 땅 일부를 삼성가가 사들이기도 했다.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단로 176
가는길 ┃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3번 출구

⑤ 신당동 떡볶이 거리

신당동 즉석 떡볶이와 떡볶이 타운의 전경. /한국관광공사·조선DB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한국의 대표 간식은 떡볶이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인데, 떡볶이 하면 ‘신당동’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건 왜일까. 바로 이곳이 빨간 ‘고추장 떡볶이’의 원조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를 고안한 사람이 신당동 떡볶이 거리에서 58년간 떡볶이 장사를 한 고(故) 마복림 할머니로 알려져 있다.

마 할머니는 1953년부터 신당동에서 가판대를 차리고 떡볶이를 팔았다. 당시에는 간장 양념의 ‘궁중 떡볶이’ 만이 있었으나, 마 할머니가 짜장면을 먹다가 실수로 떡을 떨어뜨린 뒤 춘장과 고추장을 섞어 지금의 떡볶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다. 지금의 신당동 떡볶이 거리는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최고 호황이었다. 당시는 고교야구의 전성기였는데, 인근 동대문야구장에서 경기가 끝나고 나면 떡볶이 거리는 늘 학생들로 북적였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80년대의 신당동 떡볶이집에는 사연과 음악을 들려주던 ‘DJ 오빠’도 있었다. 값싼 간식거리에 불과했던 떡볶이는 오늘날엔 거뜬한 한 끼 식사가 될 만큼 진화했다.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다산로33길 10-18
가는길 ┃ 지하철 2호선 신당역 8번 출구

⑥ 동대문 패션 거리

(왼쪽) 동대문 쇼핑몰 내부 모습. (오른쪽) 동대문시장 도매상가 주변에 지방으로 내려갈 물품들이 쌓여 있다. /조선DB

동대문 패션 거리를 한 번쯤 다녀와 본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서울은 ’24시간 잠들지 않는 도시’라고.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 동대문 패션 거리에서는 커다란 옷 봉지를 메고 다니는 사람들을 손쉽게 볼 수 있다. 의류 도·소매 매장이 밀집된 이곳에서는 옷의 생산·유통·판매가 단 3일 만에 이뤄진다.

동대문(흥인지문)과 동대문역사문화박물관에 걸쳐 대규모로 형성돼 있는 현재 패션거리의 모태는 평화시장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의류 도매상가인 평화시장은 1962년 지어졌는데,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곳에 의류 제조·판매 상인들이 모여있었다. 청계천 변에 판잣집을 짓고 살던 이들 상인은 절반 이상이 6·25 전쟁 이후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평화시장이라는 명칭도 이들이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붙였다는 설이 있다. 동대문 패션거리가 외국인이 꼭 찾는 관광명소가 되면서, 정부는 2002년 이 일대를 패션타운 관광특구로 지정했다. 관광지로는 두말할 것도 없고, 동대문 패션 거리는 여전히 그 이름값을 하고 있다. 지방의 소매상들도 이곳에서 옷을 사기 위해 상경한다.

▶관련기사 동대문 새벽시장 누비는 ‘사입 삼촌’… 밤새 도매상 150여곳 훑어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6가
가는길 ┃ 지하철 2·4·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호선 동대문역
관련 사이트┃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http://www.dft.co.kr)

⑦ 창신동 문구·완구 거리

(왼쪽) 1996년대 창신동 문구완구 거리의 모습. (오른쪽) 최근 문구완구 거리 매장의 내부. /조선DB·한국관광공사

한국의 ‘장난감 백화점’ 창신동 문구·완구 거리의 시작은 1960년대 동대문역 앞에서 상인들이 팔던 볼펜이었다. 이후 인근의 방산시장에서 분가한 몇몇 상인들이 창신동으로 넘어오며 시장이 형성됐다. 초기엔 주로 문구류를 취급했지만, 점차 구하기 힘든 수입 장난감 등을 팔며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창신동 문구·완구 거리가 가장 북적이는 때는 학기 초와 어린이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다. 대형마트에 밀려 예전만 못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 거리에는 100여 개의 점포가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가격. 창신동 문구·완구 거리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공장에서 바로 가져와 팔기 때문에 시중보다 30%가량 더 싸다. 고객이 직접 바코드를 찍어 물건 가격을 확인할 수 있는 점도 이색적이다. 오늘날에는 이곳이 특이한 장난감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덕후’들의 천국이 됐다. 또 파티 문화가 확산되면서 관련 제품을 찾거나, 사진 찍을 때 필요한 소품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종로52길 36
가는길┃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하차 후, 4번 출구로 나와 독일약국 옆 골목으로 진입
관련 사이트 ┃ 창신동문구완구거리(http://changsintoys.modoo.at)

⑧ 종로 귀금속 거리

(왼쪽) 종로 귀금속 상가의 금 제품. (오른쪽) 귀금속을 보고 있는 시민들. /조선DB·한국관광공사

TV 뉴스에서 금값이 내리거나 올랐을 때 으레 자료화면으로 나오는 장소가 종로다. 귀금속 상가가 밀집돼 있는 종로3가 거리는 예로부터 금값의 변동에 가장 민감한 곳이었다. 예로부터 서울 제1의 상권이자 유동인구가 많은 중심부였던 탓에, 종로에는 금은방이나 전당포가 들어섰다.

종로가 금은방이 많은 땅이 된 건 1960년대부터다. 종로4가 예지동을 중심으로 생겨난 귀금속 상가들은 1980년대 폭발적으로 늘어, 종로3가 일대를 모두 차지하게 됐다. 2003년 즈음에는 전국 귀금속 거래의 80%가 종로에서 이뤄졌을 만큼 시장이 활발했다. ‘종로’라는 상징성도 있지만, 이곳의 귀금속이 시중보다 30%가량 저렴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종로 거리가 학원과 유흥업소로 재편됐지만, 여전히 이곳에는 1,000여 개에 달하는 귀금속 상가가 있다. 하지만 ‘스몰웨딩’을 원하는 젊은 커플이 많아지며 결혼 예물의 수요는 꾸준히 줄고 있는 추세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3가
가는길┃지하철 1·3·5호선 종로3가역 2-1번 출구
관련 사이트 ┃ 종로주얼리타운(http://jewelrytown.modoo.at/)

⑨ 익선동 한옥 거리

(왼쪽)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보여주는 익선동 한옥마을 야경. (오른쪽) 한옥 거리의 모습. /조선DB

뒤로는 빌딩 숲이 우거져 있는데, 꼭 여기만 세월이 멈춘 듯 기와집 130여 채가 모여있다. 북촌 한옥마을보다 더 먼저 만들어졌다는 익선동 한옥마을이다. 이곳에 있는 한옥들은 9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익선동 한옥거리는 1920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건설업자인 정세권 선생이 도시형 한옥마을로 개발한 곳이다. 사대부가 살았던 북촌의 한옥보다는 한층 소박한 것이 특징이다. 이 일대 거리가 2004년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됐지만,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산된 적이 있다. 오랫동안 재개발 지역에 묶여있다 보니 지금은 과거로 돌아간 듯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게 됐는데, 결과적으로는 이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최근 한옥의 분위기를 살려 만든 카페나 선술집, 편집숍 등이 등장하며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새로운 명소로 떠오랐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여성조선] 익선동 나들이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익선동
가는길 ┃ 지하철 1·3·5호선 종로3가역 4번 출구로 나온 뒤, 횡단보도를 통해 맞은편 골목으로 이동

⑩ 아현 웨딩 거리

아현 웨딩 거리 입구에 있는 표지판과 웨딩 드레스 가게의 모습. /조선DB

1970년대, 아현동에서 이화여대 입구까지 이르는 거리에 웨딩 드레스숍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웨딩 거리’는 90년대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들에게 꼭 들러야 하는 코스였다. 이곳의 웨딩드레스가 다른 곳보다 싸고 예뻤기 때문이다. 웨딩드레스 뿐 아니라 한복집, 가구거리, 종로 귀금속 거리가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이 일대가 한때 ‘신부의 거리’라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120여 곳이 넘던 아현 웨딩거리의 드레스 가게는 지금 얼마 남아있지 않다. 대표적인 웨딩 업체들은 이미 강남으로 자리를 옮겼고, 일부는 다른 업종으로 가게가 바뀌었다. 웨딩 거리의 손님이 줄자 자연스레 가구 거리로 이어지던 발길도 줄었다. 아현 웨딩 거리가 쇠락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시간 없는 여성들’이 늘었다는 것이 꼽힌다. 한마디로 직장 여성들이 직접 발품을 팔지 않고 컨설팅 업체를 통해 결혼 준비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웨딩 드레스로 명성이 높았던 아현 웨딩 거리는 지금은 연주복·파티복 등 주력 상품을 바꾸며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관련기사 위기 맞은 40년 전통 이대앞 웨딩드레스 거리, 해법은?

위치 ┃서울특별시
가는길┃ 지하철 2호선 이대역 3·4·5번 출구 또는 아현역 1·4번 출구
관련 사이트 ┃ 이대·북아현 웨딩거리(http://www.weddingtown.kr)

⑪ 이태원 앤틱 가구 거리

이태원 앤틱 가구거리의 가구들. /한국관광공사

북아현동·논현동 등 서울 시내에 가구점이 밀집된 가구 거리는 여럿 있지만, 이태원에 있는 가구 거리만큼 특색 있는 곳은 드물다. 이곳에서는 일반 브랜드 가구가 아닌, 앤틱(Antique·골동품)과 빈티지(Vintage)한 컨셉의 가구를 취급한다. 가구 외에 인테리어 소품, 장식품, 찻잔 등도 인기 품목이다.

이태원 앤틱 가구거리는 1960년대, 인근 미군부대의 군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쓰던 가구를 팔려고 내놓던 것에서 시작했다. 이후 시장이 점차 커지고, 유럽 등지에서 온 가구 상인들까지 합류하며 현재는 100여 개에 가까운 매장이 밀집해 있다. 가게마다 고풍스러운 느낌의 가구를 거리에 진열하고 있어, 이곳을 지나가면 마치 유럽에 와 있는 기분도 느낀다. 몇 년 사이 이태원 상권이 뜨면서 앤틱 가구거리는 과거보다 훨씬 성행하게 됐다. 특히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나들이객을 비롯해 앤틱 가구 애호가들이 북적인다. 지난해 용산구는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을 벤치마킹하여 보도를 넓히는 등 거리를 재정비했다.

위치 ┃ 서울특별시 용산구 녹사평대로26길 91
가는길 ┃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3번 출구에서 직진
관련 사이트┃이태원앤틱가구협회(http://www.itaewonantique.com)

⑫ 답십리 고미술 거리

답십리 고미술 거리의 풍경. /조선DB

분명 위쪽은 허름한 아파트인데, 같은 건물의 1층에는 가정집과 어울리지 않는 석상과 목상들이 즐비하다. 그뿐 아니다. 조선시대 선조들이 쓰던 갓이나 보부상이 썼던 모자, 반상기와 놋그릇까지 도시에서 보기 힘든 물건들이 가득하다. 도심 속의 골동품 시장 답십리 고미술 거리의 얘기다.

답십리 고미술 거리는 1980년대 중반부터 청계천, 이태원, 아현동 등에 흩어져 있던 고미술 상점들이 모여 형성됐다. 서울의 중심부가 개발되면서 상대적으로 세가 저렴한 변두리로 상인들이 이주하게 된 것이다. 현재 이곳에 있는 고미술 상점은 150여 개. 가게마다 도자기·그릇·그림 등 취급하는 제품이 달라 한 곳 한 곳이 박물관 같다. 단지 오래된 골동품을 모아 파는 것이 아니라, 이 거리에 있는 상인들은 고미술에 대해 전문 지식도 갖고 있다. 고미술품이라 하여 고가의 제품만 있는 건 아니다. 몇천 원짜리 소품부터 1만 원짜리 엿장수 가위, 10만 원짜리 민화 등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는 물건도 많다.

▶관련기사 박물관이 살아 있다

위치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답십리동 530
가는길 ┃ 지하철 5호선 답십리역 1·2번 출구

⑬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

의정부 부대찌개의 원조로 알려진 오뎅식당의 과거 모습과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의정부 부대찌개. /조선DB

부대찌개가 미군 부대 인근에서 나오는 소시지와 햄을 이용해 만든 음식이란 건 잘 알려져 있다. 군에서 나오는 이 재료를 ‘부대 고기’라 했기 때문에 부대찌개라는 이름이 붙었다.

동두천, 포천, 연천, 철원 등의 지역과 인접해 있는 경기도 의정부시는 미군 부대의 보급 기지 역할을 했다. 자연히 미군 물자가 오갔고 이는 ‘의정부 부대찌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된다. 현재 10여 곳의 식당이 모여있는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에서 원조로 꼽히는 곳은 ‘오뎅식당’이다. 미군 부대 사람들에게 오뎅을 팔다가 부대 고기로 반찬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에 찌개를 만들어줬다고 전해진다.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라는 명칭은 2000년대 들어 쓰이고 있으며, 2006년부터는 매년 부대찌개 축제를 열고 있다. 이 기간에 방문하면 의정부 부대찌개를 무료로 맛볼 수 있다.

▶관련기사 삶의 애환이 깃든 찌개 한 그릇, 의정부 부대찌개

위치 ┃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 일대
가는길 ┃ 의정부 경전철의 의정부 중앙역 하차 후 2번 출구


누군가는 서울이 너무 빨리 변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찬찬히 둘러보면 과거의 모습이 남아있는 거리들도 많다. 전통을 그대로 지켜서 더 사랑받는 거리가 있는가 하면, 너무 전통적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든 거리도 있다.

서울시와 각 구(區)는 전통과 역사가 있는 ‘OO 거리’를 지키기 위해 각종 사업과 행사를 펼친다. 이야기를 가진 ‘OO 거리’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지자체는 물론 시민들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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