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124] 後天開闢의 역사철학

입력 : 2018.01.01 03:15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때마다 혼자 꺼내보는 카드가 후천개벽(後天開闢)의 거대담론이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의 희망이 없던 시절에 민족종교 지도자들이 꺼내 들었던 낙관적 역사철학이다. 선천(先天)의 5만 년 세월은 지나갔고, 후천(後天)의 5만 년 역사가 새로 시작되고 있다는 게 후천개벽설이다.

일제강점기에 춘원 이광수와 같은 당대의 지성들은 일본의 지배가 적어도 1백 년은 계속될 줄 알고 친일에 나섰다. 그러나 계룡산과 모악산에서 토굴 파 놓고 보리밥 한 그릇으로 연명하던 민족종교의 ‘도꾼’들은 일본이 곧 물러갈 것으로 보았다. ‘후천의 5만 년 대운이 시작되는 시점이므로 일본이 사경(私耕·품 팔은 대가)도 못 받고 곧 물러갈 것이다. 조금만 참자’고 예언하였다.

결과를 놓고 보면 당대의 식자층은 앞일을 몰랐고, 계룡산, 모악산의 미신 종사업자(?)들이 미래를 내다보았다. ‘영발(靈發)’ 앞에 가방끈은 무력한 경우가 많은데, 일제강점기에 가방끈과 영발의 승부가 분명하게 갈렸던 셈이다.

후천개벽을 영어로 표현하면 ‘Great Open’이다. 무엇이 오픈된다는 말인가? 우선 양반·상놈의 신분 차별이 없어질 것이고, 광대가 대접받는 사회가 오고, 애를 못 낳는 시대가 온다고 보았다. 남녀차별이 사라지고 남녀동권(同權)이 된다고 예언하였다. 증산교를 창시한 모악산의 강증산(姜甑山)은 자신의 아내이자, 천하의 여자를 상징하는 고수부(高首婦)에게 자기의 배를 올라타서 앉으라고 시켰다. 남자를 뉘어 놓고 깔고 앉아서 부엌칼로 남자를 찌르는 퍼포먼스도 하였다. 5만 년 동안 남자에게 당한 원한을 해소하는 해원상생(解寃相生) 굿이었다.

전남 영광에서 도를 통했던 소태산(少太山)은 ‘물질이 개벽 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슬로건을 걸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는 장면을 보면서 정신개벽의 문제를 실감하였다. 소태산은 한국의 운세를 어변성룡(魚變成龍·잉어가 변해서 용이 됨)으로 낙관하였다.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나는 한국의 미래를 낙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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