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으며] 어디에나 희망의 불빛은 있다

입력 : 2018.01.01 03:12

고흐 그림, 자코메티 조각에서 삶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본다
2018년 날짜 적힌 다이어리엔 아직 쓰이지 않은 희망이 있어
最高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고 담금질한 生은 예술이 될 것

정여울 문학평론가·작가
정여울 문학평론가·작가

얼마 전 영화 ‘러빙 빈센트’를 보면서, 어떤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했다. 화가 반 고흐는 부모와 연인과 관람객의 사랑도 받지 못했지만, 인생과 세계와 타인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지치지 않고 ‘내가 아닌 것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영화 속 대사는 그가 견뎌낸 고통의 그림자를 아프게 드러내지만, 또한 역설적으로 그가 피워낸 희망의 불씨를 환하게 드러낸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삶을 살다보면 무너질 수 있다”는 말에 가슴 저미다가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 이 보잘것없고 별 볼일 없는 내가 마음에 품은 것들을. 너의 사랑하는 빈센트가”라고 쓴 편지를 보면 고흐의 소원이 끝내 이루어졌음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나는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고흐는 현실의 장벽 앞에서 예술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고, 생을 남김없이 태워 삶이라는 이름의 위대한 작품을 남기고 떠났다.

각종 모임에 불려 다니기보다 나 자신에 침잠하는 시간이 절실해지는 요즘, 고흐가 전해준 희망의 메시지에 감동한 나는 내친김에 또 다른 예술가의 삶에 풍덩 빠져보기로 했다. “내가 작업하는 이유는 이처럼 고통스럽고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메시지다. 젊은 시절 현란한 색채화도 그렸고, 강한 볼륨의 조각상도 만들었지만, 특유의 스타일로 자리매김한 앙상하고 미니멀한 형태를 얻기까지, 그는 고통의 잔가지를 쳐내고 쳐내 생의 핵심을 향해 질주하는 험난한 인생길을 걸어갔다. 뼈만 간신히 남은 듯한 자코메티의 가녀린 조각상은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우리 몸을 둘러싼 모든 화려한 장신구를 떼어내면, 계급장도 간판도 이름도 떼어내면, 무엇이 남을까. 바로 그 최후의 것이야말로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닐까.

그의 대표작 ‘걸어가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 가슴이 턱 막혔다. 상상을 뛰어넘는 장엄함이었다. “우리는 ‘걸어가는 사람’이다. 우리는 실패했는가? 그렇다면 더욱 성공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걸 포기하는 대신 계속 걸어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만약 이것이 하나의 환상 같은 감정일지라도 무언가 새로운 것이 또다시 시작될 것이다. 당신과 나, 우리는 계속 걸어 나아가야 한다.” 자코메티는 부러질 듯, 무너질 듯, 넘어질 듯하면서 결코 걸음을 멈추지 않는 한 사람을 빚어냄으로써 인간의 눈부신 희망을 그려낸 것 같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어디에나 희망의 불빛이 있다.

2018년, 365일의 날짜가 또박또박 적힌 다이어리를 한 권 펼쳐보자. 거기 365개 희망의 불빛이, 아직 쓰이지 않은 365개 희망의 언어가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터키 시인 나짐 하크메트가 ‘진정한 여행’에서 노래했듯,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으니까.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고,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니까. 고통의 한가운데서 생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려는 용기가 있다면, 아픔은 우리를 담금질해 생을 저마다 하나씩 빛나는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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