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인동차(忍冬茶)

입력 : 2018.01.01 03:10

인동차(忍冬茶)

노주인의 장벽(腸壁)에
무시로 인동(忍冬) 삼긴물이 나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어 붉고,

구석에 그늘 지여
무가 순돋아 파릇 하고,

흙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風雪)소리에 잠착 하다.

산중에 책력(冊曆)도 없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정지용(1902~1950)(‘정지용전집1 시’, 민음사, 1988)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인동차(忍冬茶)

인동초는 겨울에도 푸른 잎이 떨구지 않는 야생초(목)이다. 초여름에 꽃과 잎을 갈무리해두고 내내 음용하기도 하지만, 한겨울의 잔설을 딛고 선 잎과 줄기를 말려 잎은 우려먹고 줄기는 끓여 마시는 게 더 인동차답다. 삼동에 들어선 겨울 무가 하얗고 자작나무가 하얗고 눈 쌓인 산중이 하얗다. 자작나무 덩그럭(다 타지 않은) 불이 ‘도로’ 붉게 타고, 그늘진 겨울 무에 ‘파릇’ 순이 돋고, 흙 냄새도 여전히 훈훈하니, 인동차를 마시며 풍설(風雪) 소리에 잠착(골똘)한 저 노주인이야말로 눈 속에 핀 복수초(福壽草)만 같다. 책력(달력)도 없이 삼동을 견뎌내는 노인의 장벽(腸壁)도 하얄 거 같다. ‘노익장(老益壯)’은 원래 ‘궁당익견(窮當益堅) 노당익장(老當益壯)’에서 유래한 말이다. ‘궁핍한 상황에서도 더 단단해지고 늙어서도 더욱 스스로를 가다듬는’ 마음으로, 한 해의 시작을 맑은 차 한 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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