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본 아빠만 압니다, 이런 행복감”

입력 : 2018.01.01 03:07 | 수정 : 2018.01.01 03:09

[아이가 행복입니다] [제1부-한국인의 출산 보고서] [1] ‘아빠 육아’ 3인의 이야기

– ‘전업육아’ 택한 4둥이 아빠
집에 얼굴만 잠깐 비추던 남자… 2년 만에 초등학교 학부모회장
“날 때부터 ‘엄마’가 어디있나요… 아내에만 맡겼던 나, 너무 미안”

– 육아 협동조합 만드는 3둥이 아빠
유연근무제 활용해 10시 출근… 학교 보내고, 퇴근후 공부 봐줘
“아이 키우는 행복 나누고 싶어 용인에 공동육아단지 지어요”

– 롯데 1000번째 남성 육아휴직자
“아내보다 육아는 잘 못하지만 몸으로 놀아주는 건 내가 낫죠
책 읽어주고 과자 나눠 먹고… 아이와 알콩달콩 친해졌어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새로운 행복감’을 자랑하는 남자들이 있다. 세계 최장기 초(超)저출산국(합계 출산율 1.3명 미만)인 한국에서 모성애가 아닌 ‘부성애’로 아이 행복을 느끼는 남성들을 만나봤다. 인터뷰는 중간중간 자주 끊겼다. 인터뷰 내내 아이들은 “아빠” “아빠” 부르며 매달렸다. 아빠들은 “인터뷰해야 하는데” 걱정하면서도, 입이 귀에 걸렸다.

①가부장적 아빠가 아이 넷 키워보니

네 자녀‘전업 육아’를 택한 오택기(맨 위)씨, 아이들 등교와 방과 후 공부를 책임지는 선정현(가운데)씨, 롯데그룹 1000번째 남성 육아휴직자인 김영백(맨 아래)씨는“육아는 어렵지만 행복하다”고 했다.
네 자녀‘전업 육아’를 택한 오택기(맨 위)씨, 아이들 등교와 방과 후 공부를 책임지는 선정현(가운데)씨, 롯데그룹 1000번째 남성 육아휴직자인 김영백(맨 아래)씨는“육아는 어렵지만 행복하다”고 했다. /고운호·오종찬·남강호 기자

오택기(42)씨는 때때로 아침 6시까지 술 마시다 집에 들어와 옷 갈아입고 다시 회사 나가던 남자였다. 아내가 “당신은 가부장적 남자”라고 했지만, 한국 남자가 다 그러려니 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딸 리온(11)·가온(9)·유오(8), 아들 태양(6)을 키우며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아빠 학부모회장’을 맡고 있다.

자의는 아니었다. 아내 몸이 불편해져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졌다. ‘육아 휴직’을 신청하자, 회사 인사과에서는 “육아휴직 양식이 없다”고 했다. 13년 다녔던 회사에 2015년 6월 사표를 냈다. 아이 넷은 돌아가며 감기에 걸려 하루에 세 번 병원에 간 적도 있다. “출퇴근이란 개념 자체가 없던데요. 밥, 빨래, 청소, 다시 밥, 빨래…. 이건 해본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겁니다.” 첫 일 년은 좌충우돌. “이렇게 힘든 걸 와이프에게만 맡겨놨구나 생각했어요. 세상에 날 때부터 ‘엄마’였던 사람은 없는데, 모두에게나 육아는 ‘맨땅에 헤딩’이었는데….” 하루는 쏜살처럼 지나가고 육아의 짐은 가볍지 않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를 본다’는 말은 옳지 않아요. ‘아이와 같이 성장한다’가 맞아요.” 학부형들과 ‘육아일기’를 공유하던 그는 이제는 책을 준비하고 방송에도 출연한다. “첫째는 바둑, 둘째는 그림, 셋째는 춤, 막내는 ‘록 스피릿’에 빠졌어요. 같은 부모, 한집에 살아도 아이들은 다 달라요. 그래서 육아가 정말 창조적 작업이죠.” 아내 건강이 나아져 미용일을 다시 시작했지만, 그는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오씨네 집에는 매일 밤 ‘취침 의식’이 있다. “아빠는 행복한데, 너희도 다 행복하니?” 아이 넷이 답한다. “네, 행복해요.”

②육아 협동조합을 만드는 아빠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다니는 선정현(36)씨는 2016년 7월부터 ‘독박 육아 극복을 위한 협동조합’을 꾸리고 있다. 젊은 부부는 물론 결혼을 앞둔 청년, 손주를 기다리는 부부 등 8가구(30명)를 이미 모았다. 앞으로는 조합비를 출자해 경기도 용인의 초등학교 근처에 주택단지와 도서관을 지어 공동육아단지를 꾸릴 예정이다. 올해 7월 사회적 기업으로 인가받는 게 목표다. 이유는 “애 키우는 행복감을 공유하고 싶어서”다. 2016년 7월부터 ‘유연근무제'(출퇴근 시간을 스스로 정해 하루 8시간 근무)를 활용, 지우(8), 윤아(7), 원재(4)를 아내와 함께 키우고 있다. “저녁에 애 셋이 한방에 쪼르륵 누워 있는데,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니 갑자기 가슴이 찡하고 뭉클한 거예요.” 아내가 일찍 출근을 해, 선씨는 오전 10시 출근 계획을 세웠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이 깨우고, 씻기고 학교 보낼 준비를 한다. 아이 셋 속옷·양말 찾는 데에만 30분씩 걸리기도 한다. 첫째·둘째를 초등학교·유치원에 데려다준 뒤, 셋째를 어린이집에 내려주면 8시 45분. 곧장 회사로 출근하면 빠듯하게 도착한다. 그런데 이 육아 전쟁이 선씨의 생각을 바꾸는 힘이 됐다. “예전에는 아이들과 교감이 없었어요. 이제는 아이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아빠’를 심어주게 된 거죠.” 아빠가 서투니, 대신 아이들끼리 서로 돕고 자립심도 높아졌다. 예상 밖 소득이다.

선씨는 “빡빡한 다른 직장에 비해 좋은 직장을 다녀서 유연근무제를 쓸 수 있는 게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몇 년은 진급 생각도 포기해야 하고 희생할 것도 많다”고 했다. “여성이 ‘독박 육아’를 하게 되면 가정이 파괴되고,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사회로 나가면 또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가정이 먼저 바로 서야 하는데, 유연근무제와 육아휴직제가 빨리 정착되어야 합니다.”

③롯데의 1000번째 남성 육아휴직자

롯데손해보험 김영백(37) 파트장은 롯데그룹의 ‘1000번째 남성 육아휴직자’ 타이틀을 갖고 있다. 롯데그룹은 2017년 초 업계에선 처음으로 남직원 육아휴직 의무화 제도를 도입했다. 남직원들이 아내 출산 후 1년 내 최소 1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쓰도록 한 것이다. 휴직 첫 달 통상임금의 100%를 보전해주는 등 혜택까지 있어 작년 육아휴직을 쓴 남자 직원만 1100여 명이다.

김 파트장도 작년 11월 둘째 소민이가 태어난 뒤 12월 1일부터 남성 육아휴직 대열에 동참했다.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김 파트장은 ‘육아 달인’처럼 보였다. 기저귀가 축축해 울던 소민이는 아빠 손길만 닿았는데 울음을 곧장 멈췄다. 두 살 서우는 아빠가 머리를 묶어주는 와중에도 자꾸 “아빠” “아빠”하며 품에 와락 안겼다. 그래도 아직 자신이 없다. “육아는 확실히 엄마가 더 잘하겠다 하는 생각은 듭니다. 출산 이후에도 함께 지내며 교감해 왔으니 당연하겠죠. 그렇지만 남자가 유리한 대목도 분명해요. 아이들과 신체적 활동을 하는 건 아빠가 훨씬 나은 것 같아요.” 김씨는 요즘 첫째 서우와 ‘비밀’을 쌓아가고 있다. 아쿠아리움 가서 감자튀김 사 먹은 일, 먹지 말라던 과자를 나눠 먹은 건 엄마에겐 비밀이다. “엄마랑 아빠가 각각 같은 책을 읽어줘도 아이가 받아들이는 건 완전히 다르다고 해요. 정서 발달에 그만큼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김 파트장은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요즘은 영어에 코딩 과외도 필수라는데, 사교육 가격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생전 처음 맞닥뜨린 세상이다. 길지 않은 육아 휴직이지만, ‘엄마 입장’이라는 걸 생각하게 됐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 시기가 한창 직장에서 커리어를 쌓는 시기와 겹칩니다. 체력도 달리고, 출산이나 양육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을 테니, 여성들의 짐이 무거울 것 같아요. 그때 남편, 아빠의 역할이 정말 중요해요.”


〈특별취재팀〉

박은주 부국장, 홍영림 여론조사전문기자, 이경은 차장, 김성모·주희연·권선미·김상윤·김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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